서양 학문이 동쪽으로 밀려오던 시대 배경 속에서, 전통 명리학자들은 명리학을 학술화하고 규범화하고자 힘썼다. 그 결과 「남원북위(南袁北韋)」라 불리는 성황이 이루어졌다.
1912 - 1949
앞을 잇고 뒤를 열다

종사와 공헌
원수산(袁樹珊)
대표 저작
『명리탐원(命理探原)』
역사적 공헌
연원을 고증하였으며 명리에 정통하였을 뿐 아니라 의술과 덕행을 더욱 중시하였다. 민국 명리계의 종사이다.
위천리(韋千里)
대표 저작
『천리명고(千里命稿)』
역사적 공헌
글이 쉽고 통속적이며 통신 강좌를 열어 명리학의 대중화에 큰 공헌을 하였다.
서락오(徐樂吾)
대표 저작
『자평진전평주(子平眞詮評註)』『조화원약평주(造化元鑰評註)』
역사적 공헌
고적 정리에 세운 공이 크다. 그의 평주는 논란이 있으나 오늘날에도 여전히 입문의 중요한 다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