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대(晉代)에 이르러 술수는 한층 구체화되었고, 「연(年)」과 「명(命)」의 관계로 길흉을 판단한 명확한 기록이 나타난다.
『진서(晉書)』에 따르면 술사 대양(戴洋)은 심양(潯陽)을 지키던 유윤(劉胤)의 죽음을 정확히 예언하였다. 당시 유윤은 마흔일곱이었고 행년(行年, 곧 유년)이 마침 「경인(庚寅)」에 들어섰다. 대양은 『태공음모(太公陰謀)』를 인용하여 「육경(六庚)은 백호이니… 아래에 있는 것은 해로운 기운이다」라고 짚었다.
그는 유윤에게 「해와 명이 서로 맞으니 반드시 흉한 일이 있을 것」이라 경고하며 「12월 22일 경인일에는 결코 손님을 만나지 말라」고 일렀다. 유윤은 동진 함화(咸和) 5년(330년)에 살해되었다. 앞서 말한 관로의 논명으로부터 겨우 칠십여 년 뒤이니 명리학 탐구의 진전도 결코 더디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당시 이미 본명년과 유년, 그리고 날짜의 간지 관계를 써서 정밀하게 판단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명리 기법의 중요한 진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