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운」에서 「사람의 운」으로 옮겨간 시기이다. 왕충(王充)의 논명(論命)과 관로(管輅)의 복서(卜筮)는 술수가 개인 운명의 우연성과 필연성에 주목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이른 「논명 기록」은 삼국시대 관로의 것이다. 관로는 술수에 정통하였는데, 『삼국지·위서(魏書)』에는 자기 운명에 대한 그의 평이 실려 있다. 「또한 나의 본명(本命)은 인(寅)에 있고 월식이 있는 밤에 태어났다. 하늘에는 정해진 수가 있어 어길 수 없으나 사람이 알지 못할 뿐이다. 내가 앞뒤로 죽을 때를 맞힌 이가 백 명이 넘되 거의 틀린 적이 없다.」
이는 관로가 자기 자신을 위해 명을 본 것이다. 이른바 「본명이 인에 있다」는 것은 그가 건안(建安) 15년(210년), 곧 경인년(庚寅年)에 태어났음을 가리킨다. 그는 자신의 생년월일시를 근거로 스스로가 「단명」할 사람이라고 추산하였다. 과연 이듬해 세상을 떠났으니 향년 마흔여덟이었다.
그는 백여 명의 죽을 때를 예언하여 대체로 들어맞혔다고 스스로 말하였다. 출생 시각으로 개인의 운명을 추산하는 전통 명리학이 삼국시대에 이미 그 실마리를 드러냈음을 알 수 있다.
